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하룻밤 새 1,700명 살해한 '니오스 호 미스터리'
1. 개요
1986년 8월 21일 카메룬 북서부의 화산 분화구 호수인 니오스 호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분출해, 인근 마을 주민 1,746명과 소 3,500여 마리가 잠든 사이 질식사했다. 한국어권 괴담 게시물에서 "상처 하나 없는 주검"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폭발도 불길도 무너진 집도 없이 사람과 가축만 쓰러져 있었다.
이후 과학자들의 조사로 호수 바닥에 오랫동안 녹아 쌓여 있던 이산화탄소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호수 분출(limnic eruption)"이었다는 점은 규명됐다. 그러나 그 균형을 무엇이 깨뜨렸는지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건은 자연재해로 정리되면서도 "미스터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2. 잠든 마을을 덮친 구름
니오스 호는 카메룬 수도 야운데에서 북서쪽으로 약 315km 떨어진 북서부 지역, 오래된 화산 분화구 안에 있다. DW는 이 호수가 오쿠 화산지대에 속한다고 전했다. 더쿠에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따르면 호수는 크지 않지만 가장 깊은 곳이 200m가 넘었다. 호수 아래 계곡에는 니오스, 캄, 차, 수붐 같은 마을이 이어져 있었고, 주민들은 물과 풀이 넉넉한 이곳에서 소를 키웠다고 한다. 화산은 오래전에 조용해졌다고 여겨졌기에 호수가 사람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호수 밑에서는 지하에서 올라온 이산화탄소가 오랜 기간 바닥 물에 녹아 쌓이고 있었다. DW가 인용한 카메룬 지질학자 아이작 콘포르 닐라는 사건 전에 아무런 경고 신호도 없었다고 말했다. 호수의 위층에는 산소가 풍부한 물이, 깊은 층에는 이산화탄소로 포화된 물이 있었다는 것이 조사 결과다. 한국일보와 게시물은 이를 뚜껑 닫힌 탄산음료 병에 비유한다. 흔들거나 뚜껑을 여는 순간 거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는 설명이다.
분출 시각은 보도마다 다르다. 게시물과 YTN은 밤 9시경으로 전했고, 한국일보는 8월 21일 새벽이라고 썼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때 호수에서 100m 높이의 물기둥이 치솟고 최고 25m의 파도가 일었다. 학자들은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최소 10만 톤에서 최대 160만 톤으로 추정했다. YTN은 이를 "최대 1,600톤"이라고 적어 수치가 서로 맞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공기보다 1.5배 무거워 하늘로 흩어지지 않고 산자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게시물은 이 가스 구름이 약 50m 두께로 시속 20~50km로 계곡을 내려갔고, 색과 냄새가 거의 없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피해 범위는 한국일보와 게시물에서는 호수 반경 25km 안쪽이지만, YTN은 100km 근방까지 가스가 들어찼다고 했다.
3. 침묵의 아침과 생존자들
8월 22일 아침 마을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고 한다. 게시물은 닭과 소의 울음소리가 없었고, 가축과 들짐승, 새는 물론 파리까지 죽어 있었다고 전한다. 구름은 밤사이 흩어져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남은 것은 사망자 1,746명과 부상자 845명, 소 약 3,500마리였다. 한국일보는 더 바깥 지역 주민 4,000여 명이 대피했고 상당수가 호흡곤란과 마비 증세 같은 후유증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생존자의 증언은 비슷했다. 조셉이라는 남성은 잠들기 전 지독한 냄새를 맡고 정신을 잃었다가 약 3시간 뒤 깨어났다고 한다. 게시물과 YTN이 옮긴 이 증언에 따르면, 그는 옆방에서 딸이 이상한 소리로 코를 고는 것을 듣고 일어났지만 그대로 쓰러졌다. 딸은 이미 숨져 있었다. YTN은 그가 플리머스대 아놀드 테일러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게시물은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더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시신에 "상처가 없었다"는 표현은 엄밀히는 들어맞지 않는다. 1989년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병원에서 확인된 생존자 845명의 임상 소견은 질식성 가스 노출과 일치했다. 구조대는 일부 시신과 치료받은 생존자 161명(19%)의 피부에서 홍반과 수포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산성 가스에 의한 화상으로 의심됐지만, 이후 조사에서 이산화탄소에 노출돼 혼수 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이 있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4. 붉게 변한 호수와 원인 규명
게시물은 며칠 뒤 사람들이 호수에 올라가 보니 맑고 파랗던 물이 짙은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고 전한다. 깊은 곳 물에 녹아 있던 철분이 뒤집혀 올라와 공기와 만나 녹이 슬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내용은 해당 게시물에서만 확인된다.
사건 뒤 카메룬 안팎의 과학자들이 조사에 나섰고, 깊은 물에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가 급격한 연쇄 반응으로 빠져나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DW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산사태가 가스가 가득 찬 바닥 물을 흔들어 분출을 촉발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설이 엇갈린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비슷한 일은 이미 있었다. 1984년 8월 15일 니오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모노운 호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 37명이 숨졌다. DW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모노운 호 사고를 조사하던 중에 훨씬 큰 니오스 참사가 터졌다.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도 이어졌다. 한국일보와 YTN에 따르면 카메룬 정부와 국제 화산지질학계는 호수 바닥에 관을 박아 이산화탄소를 빼내는 장비를 가동했고, 가스가 호수 밖으로 넘치지 않도록 댐도 설치됐다. 한국일보는 비슷한 조건의 호수들을 점검한 결과, 니오스보다 약 2,000배 큰 콩고민주공화국 키부 호의 바닥이 이산화탄소 과포화 상태임을 확인해 예방책을 시행했다고 전했다.
5. 진위 논란
핵심 쟁점은 이 참사가 "호수 분출"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충분히 설명되는가, 그리고 분출을 일으킨 계기를 지금도 모른다는 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5.1. 자연현상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는 쪽
이 입장은 먼저 피해자들의 몸이 말해 준다고 본다. 병원에 온 생존자 845명의 임상 소견이 질식성 가스 노출과 일치했고, 처음 화상으로 오인된 피부 병변도 이산화탄소로 인한 혼수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 정리됐다. 조셉이 증언한 이상한 냄새와 의식 상실, 약 3시간 뒤의 각성도 같은 그림을 가리킨다. 폭발이나 불길 없이 사람과 가축, 파리까지 한꺼번에 쓰러진 현장은 공기 속 산소가 밀려난 결과로 보면 자연스럽다.
두 번째 근거는 반복성이다. 2년 전 모노운 호에서 이미 같은 일이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를 호수 분출로 결론지었다. 호수 바닥에 가스를 빼는 관을 박고 키부 호처럼 비슷한 호수를 점검해 예방책을 시행했다는 사실도 이 메커니즘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준다. 계기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설명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호수가 붉게 변한 것도 철분이 풍부한 깊은 물이 위로 뒤집혔다는 설명과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5.2.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크다는 쪽
반대쪽은 "무엇이 호수를 건드렸는가"에 답이 없다는 점부터 짚는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사고 당시 지진파는 관측되지 않았고, 이산화황과 황화수소 같은 유황 성분이 감지됐지만 물속에서 화산이 터졌다는 뚜렷한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산사태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만 거론될 뿐이다. 게시물도 "뭐였는지는 지금도 확실히 모른다"고 쓰고, YTN도 약 30년이 지나도 원인은 오리무중이라고 했다. 분출의 시작점이 비어 있는데 사건이 모두 설명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BMJ 논문 역시 이산화탄소 외의 독성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피해자 피부 병변이 처음에는 산성 가스에 의한 화상으로 의심됐다는 점, 유황 성분이 실제로 검출됐다는 점을 합치면 이산화탄소 단일 원인설을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주장이다. 모노운 호에서 이산화탄소가 다량 나온 이유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고 YTN은 전했다. 이런 공백 때문에 카메룬 정부와 이스라엘이 비공개 폭탄 실험을 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고 한다. 다만 YTN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사실상 "카더라" 수준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
두 입장 모두 호수 바닥에 이산화탄소가 쌓여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다투지 않는다. 남은 문제는 분출의 직접적인 계기와, 이산화탄소 외 요인의 기여 여부다. 이 부분은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6. 여담
- 생존자의 이름은 보도마다 표기가 다르다. 게시물은 "조셉 은크와인", YTN은 "조셉 니콴"이라고 썼다. 같은 증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일보는 호수 분출을 호수 크기의 고농축 탄산수에 비유했고, 게시물은 "거대한 콜라 병"이라고 불렀다.
- YTN은 2016년 12월 알자지라 보도를 인용해 참사 생존자들이 30년 만에 옛 터전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전했다. 참사 40주기에 DW는 생존자들이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보도했다.
- 프랑스어 방송 TV5MONDE의 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1986년 8월 21일 니오스 호 인근에서 1,746명과 소 3,500마리가 잠든 채 질식사했다고 했다.